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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읍 행정복지센터

경치

운선 10경
  • 병암망월(幷巖望月) : 가산병풍암에서 바라보는 달.
  • 여원낙조(女院落照) : 여원치에서 바라보는 석양.
  • 두류청람(頭流晴嵐) : 이른 봄날 지리산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
  • 적산만하(赤山晩霞) : 고남산의 저녁노을.
  • 황산석정(荒山石井) : 황산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
  • 옥계청류(玉溪淸流) : 옥계동의 맑은 시내물.
  • 월강서학(月崗棲鶴) : 월강의 백합 무리.
  • 광탄면로(廣灘眠鷺) : 신기리 들녁에 잠자는 해오라기.
  • 발악월경(鉢岳月磬) : 바래봉의 달빛 아래 들려오는 독경의 경쇠소리.
  • 상산조욱(霜山朝旭) : 동면 서리산에 떠오르는 아침 해.
폭포
운정(雲亭)
  • 삼걸산(三傑山) 동구(洞口) 공안촌(孔安村) 위에 있다. 운성지 기록에 의하면 층층으로 쌓인 바위들이 높다랗게 서 있고 폭포가 쏟아져 이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을 잊게 한다고 하였다.
비룡폭포(飛龍瀑布)
  • 비룡폭포(飛龍瀑布)
  • 용산리 뒷산 월천(月川) 위에 있다. 월천은 현재의 용산천으로 추정된다. 덕두봉(德斗峰) 골짜기에 깎아지른 절벽에서 거꾸로 흐르는 물줄기는 30여 자가 되며 아래에는 깊은 연못이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서 목욕하면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옥계청류(玉溪淸流)
  • 옥계동(玉溪洞)에 있다. 큰 바위와 깎아지른 듯한 언덕이 길게 연결되어 있다. 맑은 시냇물이 절경을 이루면서 바위로 된 연못이 있는데 이는 마치 무릉도원과 같다. 운성 10경의 하나이다. 현재는 저수지를 축조하고 '옥계타운' 등 숙박업소가 들어서며 경관이 훼손되어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
저연(猪淵)
  •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있는 내원암 동천 상류이다. <운성지> 전편에 의하면 옛날 저연에는 '가사어'라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큰 것은 몇 자가 되고 작은 것은 한 자쯤 되었다. 물고기의 바늘이 마치 승려의 가사처럼 생긴 데에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 물고기의 맛은 매우 좋으며 겨울에는 상류에서 놀고 여름에는 함양군 마천면 송전리 모전동 용유담에서 서식한다고 하였다. 용유담에 사는 80세 노인의 말에 의하면 과거 어떤 무관(武官)이 가사어를 많이 잡고자 독약을 풀어 이 때문에 이곳 가사어가 멸종되었다고 전한다. 어떤이는 가사어는 인적이 없는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자연발생한다고 하였다. 저연이란 명칭은 과거부터 지리산의 영험을 얻고자 봄·가을로 많은 무당과 신도들이 몰려 들어 기우제나 산신제를 지냈는데 그 때 제물로 사용한 돼지를 이곳에 던져 넣곤 하여 '돼지쏘'란 의미로 저연(猪淵)이라 불리었다고 전한다.
황산석정(荒山石井)
  • 일명 장군수(將軍水)이라 하였는데 8부 능선 큰 암벽 황산대(荒山臺) 아래에 있다. 물맛이 약처럼 달콤하여 과거에는 이 약수를 마시기 위하여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기타
피바위
  • 고려 우왕 6년(1380) 황산대첩 때 참수된 왜구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고 전한다. <지봉유설> 에 의하면 임진년(1592)에 이 바위에서 저절로 피가 흘렀다고 하였다.
상사바위
  • 고남산 동북쪽 남원군 산동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높이 솟은 암벽이다. 옛날 상사병에 걸린 처녀가 이 바위 위에 올라가 떨어져 죽은 뒤 큰 지네가 되어 갈대 숲을 헤치고 다녔다는 전설이 있다.
주지암
  • 주지암(住智庵)은 신라 때부터 있어 오던 암자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이산(智異山)의 줄기가 이곳에 멈춰 이루어졌다 하여 산의 이름을 주지봉(住智峰)이라 하였다. 지이영봉(智異靈峰) 영향 때문인지 산신의 영험이 높았다. 우리의 옛 풍속에 소원이 있으면 명산에 빌고, 딸·아들 점지는 산신에 빌었다. 이곳 주지봉은 남원시에서 멀지 않아 예로부터 삶에 아쉬움이 있는 군민들은 이곳 주지봉에 빌어 바라는 바를 이루었다. 그래서 가뭄이 들때는 주지봉 정산에 기우제를 올려 효험을 보는 일이 많았으므로 관·민 할것 없이 남원군민의 기도단으로서 유래가 깊다. 이곳 기도단에 처음으로 암자를 세운 이는 김세평(金世平) 부사인데 김부사는 숙종(肅宗) 20년(1694)에 남원부사로 도임하여 군민들이 영험을 본 기도단을 그대로 둘 수 없다 하여 여러 사람들과 뜻을 합해 이듬해 암자를 세워 주지암(住智庵)이라 하였다.
  • 김세평 부사는 선원사를 중창한 것으로도 이름이 전하고 있지만 그는 이밖에도 향리에 남긴 일이 많다. 그후 주지암은 1912년 이혜능(李蕙能) 주지가 크게 수리하였는데, 이때 불상을 충청도 홍산에 있는 무량사(無量寺)에서 모셔왔다. 그런데 수년 전에 이 절이 주지의 부주위로 촛불이 넘어져 불당이 모두 타 버렸다가, 1978년 김양선(金良璇) 주지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불당이 재건되었다. 동쪽에는 백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암굴이 있어 옛부터 기도소로 유명하다. 정상에서는 날씨가 맑을 때 멀리 남원시와 곡성지방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암벽 정상에는 가로 세로 1m 크기의 평평한 바위가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산신들이 이곳에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봉화대 역할로 깃발을 꼿아 남원과 운봉을 잇는 신호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 남쪽으로 50m지점에서 주지암(住智庵)이라 새긴 창건 당시의 표시판이 근년에 발견 되기도 하였다.
옥터
  • 형옥터 : 동천리 운봉초등학교 남동쪽 주택지 옥 터 : 공안마을 앞 옛 공안림 터에 있었으며 기와조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옥터거리 : 인월마을 입구 옛 죄인을 수감하던 '터거리'의 이름이 전한다.
지역별 절터 현황
지역별 절터 정자명, 건립년도, 위치 및 규모 현황에 관한 표
정자명 건립년도 위치 및 규모
1 구룡정(龜龍亭)) 1985 운봉읍 장교마을 노인정
2 덕운정(德雲亭) 1990 산덕마을(팔각형,10평)
3 공안정 1995 공안마을
4 권포정 1989(개축) 권포마을(사각콘크리트,7평)
5 영풍정 1979 신마을 동편(양기상씨 건립)
6 용산정 1980 용산마을(팔각형, 4평)
7 장동정 ? 장동마을
8 향화정(香化亭) 1993 춘향마을 중앙(팔각기와)
9 소석정 1976 소석마을(사각정자, 3평)
10 전촌정 1993 전촌마을(사각정자, 3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