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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읍 행정복지센터

운봉읍 전설

연동마을 전설
말무덤이 있는 장승백이
  • 나찰귀(羅刹鬼)란 몸이 검고 눈이 푸르고 머리털이 붉으며 사람을 잡아먹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악한 귀신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어느 고을에나 중요 지점에 나찰귀탈의 화상을 새긴 키가 9척 이상인 목신(木神)을 세웠는데 이른바 장승이다. 운봉 소재지에서 여원치 쪽으로 5리 되는 국도 옆 장교리 연동 입구 부근을 '장승백이'라 부르는데 남원에서 여원치를 넘어 운봉을 지날 경우 장승이 서 있는 이곳을 지나게 된다. 장승백이 뒤편을 '갈마지기'라 부르는데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갈마음수혈'이란 명당이 있다고 하나 실은 길 떠나는 우마차나 길손이 이용하던 말들의 목을 축이던 곳이기도 하였다
  • 그곳에는 지금도 말에게 물을 먹이던 맑은 샘이 있고 간혹 죽은 말을 묻는 말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 그래서 외딴집이 있는 그곳을 '몰무덤'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 운봉에는 목장승은 존재하지 않으나 석장승은 8기(남원관내 총18기)가 있다. 민속자료 제20호로 지정된 서천리 석장승 2기와 권포리 4기, 북천리 2기가 그것이다.
연동마을과 노승
  • 과거 인월역을 출발한 역마가 운봉을 지나 연재에 당도하기 전 연동 앞 장승백이를 지날 때면 으레 인마(人馬)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맑은 샘물에 목을 축이고 쉬어가던 곳이 바로 지금의 갈마지기다. 그래서 이곳을 말무덤, 몰모둠(말을 모아두던 곳 또는 말 매던 곳)이라 부른다. 조선 초기,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년 전 홍정승 행렬이 이곳을 지나고 있었다.
  • 그런데 여느 때처럼 일행이 잠시 쉬고 있는 사이 홍정승이 타던 말이 보이지 않았다. 역졸들이 황급히 찾아 사면팔방을 두루 헤매다가 겨우 말의 행적을 찾아보니 말은 약 1km 떨어진 지금의 연동 마을터에 누워 있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상서로운 일이라 여기고 이 터가 명당터라 여겨 홍대감이라 일컫는 홍씨 일가가 말이 누운 자리에 집을 짓고 살면서 연동리 입향조가 되었다. 그 전에도 마을 주변이 모두 명당터인지라 권세있는 집안에서 쓴 묘가 많아 산에 막을 치고 3년 상을 치르는 시묘살이가 끊이지 않아 연동의 옛이름이 바로 '산막'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연동 한가운데는 커다란 연꽃 방죽이 있어 마을 이름을 연동(蓮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후 조선 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전국의 사찰과 스님들은 수난을 치르게 되었다.
  • 어느날 연동리에 찾아든 스님 한분을 괘씸하게 여긴 홍대감은 스님을 잡아다 대테를 틀게 하였다. 대테란 옛날 대나무를 쪼개어 나무그릇이나 오지그릇을 매는데 쓰던 것으로 대나무 대신 넓은 보자기에 콩을 길게 말아 스님의 머리를 꽁꽁 동여맨 뒤 보자기 속의 콩에 물을 부어 콩이 점점 불어나면서 머리를 조여 고통을 주는 일종의 고문인 것이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스님은 홍대감에게 대면을 청하여 말하기를 자신을 풀어주면 이 마을에 대대손손 복을 누리는 처방을 알려주겠다고 제의를 하였다. 방법인즉 연동리 앞을 가리고 있는 작은 야산과 대감집 뒷산을 트면 온갖 명예와 재복(財福)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
  • 홍대감은 이를 믿고 노승을 풀어준 뒤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스님의 말대로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홍씨 일가를 망하게 하는 노승의 분노였다. 홍씨 일가는 날로 기울어지는 가문을 바로 세우고자 다시 마을 앞에 독뫼(동산)를 세우고 집 뒷산을 원래 모양으로 메우고자 흙 한 짐에 한 냥씩하는 일꾼을 사서 액운을 막고자 하였으나 허사가 되고 결국 홍씨는 연동 마을을 뜨고 말았다. 지금도 마을 뒤 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홍씨들이 많은 돈을 들여 메운 곳이라 하여 돈구뎅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