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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읍 행정복지센터

운봉읍 전설

가산마을 전설
개구리 혈
  • 500여년 전, 성종 10년(1479) 곡부(曲阜) 공씨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한 가산 마을은 50여 가구의 비교적 아담한 마을이다.
    현재 입향조인 공씨들은 떠나고, 광해군 11년(1619) 서산 유씨와 경주 이씨 등 여러 성씨들이 입주하여 살고 있다.
    가산리 북쪽 번암면 사치(모래재) 부락만 해도 과거 백제의 영토여서 신라 영토인 가산리와는 국경을 마주하는 분쟁지역이었다. 그래서 신라는 가산산성을 쌓아 국경을 감시하며 경비와 방어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군사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좋은 터인지라 지금껏 많은 전란 중에도 큰 재앙을 당하지 않고 평안하였다.
    지금도 사람들이 절터라고 부르는 용암사우터가 용바우골에 있고 성 남쪽 아래에 태종 10년(1410) 운봉에 최초로 세워졌던 향교터가 있으며, 운봉 10경 중의 하나인 병암망월의 풍치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 옛날 마을이 번성하던 때는 아랫마을, 가운데마을, 용바웃골 세 곳으로 나누어졌다.
    어느 때인가 포목장수로 갑부가 된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명당터를 찾아 이 마을로 들어오게 되었다.
    김부자는 아랫마을에 터를 잡고 5채가 넘는 큰 저택을 지었다. 그런데 집을 짓고 산 지 얼마되지 않아 겉보기에 호화롭게 보이는 이집에 도둑이 들기 시작했다. 열 사람이 한사람 도둑 못 지킨다 했듯이 집요하게 달려드는 도둑을 막을 수가 없었다. 김부자는 집안에 많은 사람을 들여 집을 지키게 할 궁리를 하였다.
  • 그래서 매일 집에 동네 사람들을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여 집안에 사람이 끓게 하였다. 마침 끼니가 어렵던 사람들은 너도 나도할 것 없이 김부자 집으로 모여들었고, 심지어는 소문을 듣고 멀리 타관 사람들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그 중에는 학식있는 사람과 도술에 능하다는 사람들까지 찾아왔다.
    이렇게 찾아와 묵게되는 사람들은 학식 있는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글배우기를 청하고 그 청에 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넓은 김부자집은 도둑이 근접할 수 없는 훌륭한 서당이 되었다. 학식을 갖춘 훈장의 가르침을 받는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매일 끊이질 않게 된것이다.
  • 그러던 어느날 김부자집에 마이산에서 득도했다는 이도사가 찾아왔다. 이도사는 사람의 심령을 다스리는 도를 터득하였다고 하였다.
    과연 그는 사람의 마음을 꾀뚫어 보는 심미안을 지녔으며,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는 역학에 능통한 도사였다. 이도사는 식사도 보통사람과 달리 마이산에서 익힌 생식을 하였다. 이도사에게 푹 빠진 김부자는 이도사에게 도술을 배우고 싶어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이도사는 아무나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거절하였다. 김부자는 단념하지 않고 매일 이도사가 기거하는 방에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도사도 김부자의 간절한 청을 더이상 거절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흘렀어도 김부자에게는 득도의 기미가 나타나지 않았다. 김부자는 점점 초조해졌다. 이도사는 매일 솔잎과 함께 적은 양의 음식으로 생식을 하며 생활하였다.
  • 어느날 밤 몰래 김부자는 이도사 방을 몰래 훔쳐보게 되었다. 혹시 다른 비법이 있으면서 자신에게는 가르치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를 얻는다는 것은 오랜 고행을 인내하며 사심을 버려야 하거늘 김부자의 욕심은 도를 그르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훔쳐보던 김부자는 이도사가 종이에 싼 약가루를 물에 타마시는 것을 보았다. 다음번에 봤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부자는 이도사의 비법이 그 가루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 그러던 어느날, 이도사가 산행으로 자리를 비웠다. 김부자는 '이때다' 하고 그 약을 훔쳐내게 되었다.
    그 약은 아무나 복용할 수 없는 비상이었다. 김부자는 이 비상을 득도의 중요한 비술로 여겨 치사량이 넘는 비상을 물에 타 마시고 말았다. 이도사가 산행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은 온통 초상집 곡성으로 가득찼다. 김부자가 죽은 것이다. 김부자가 죽자 기거하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서당은 자연 폐쇄되고 말았다.
    이도사는 이러한 액운의 원인을 가운데마을의 개구리혈로 보았다. 간데말에서 하마정으로 흘러가는 개천이 사행천으로 어찌나 구부구불한지 마치 뱀이 기는 모습이었다. 이를 두고 풍수들은 하마정 뱀이 개구리 혈인 간데말을 향해 먹이를 먹기 위해 헤엄쳐오는 형국이라 했다.
    그래서 간데말은 뱀에게 먹히는 형국이라 평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액운을 막기 위해서는 동네 입구 개천에 큰 바위를 세워 뱀의 목을 눌러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동네 사람들은 뒷산에서 길다란 바위를 끌어다 마을 앞 개천에 수구맥이 비보석(裨補石)을 세워 마을의 액운을 막았다.
    그 후 지금까지 가산 마을은 별다른 액운이 없이 평안하게 지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