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촌
1914년 남원군 대강면 옥택리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60년대에 법정리인 옥택리가 행정리인 옥전리 · 택촌리로 나뉘었다. 1995. 1. 1 도농 통합시 발족으로 ´남원시 대강면 택촌리´가 되었다.
마을 앞산(문덕봉)이 불을 상징하는 화산(火山)이로 생겨나 마을에 불이 나기 쉽다하여 ´못 澤´자를 쓴 택촌(澤村), ´댁몰´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앞에는 방화정과 돌무덤을 쌓아 화재를 방비하였는데, 지금도 물은 없으나 움푹 파인 우물(防火井)과 돌무덤 자취가 남아있다.
현재는 택(澤)자와 음이 같고 쓰기 쉬운 ´집 宅´자를 써 택촌(宅村)이라 부르고 있다.고려 개국공신인 평산신씨 신숭겸(申崇謙)의 20대 후손인 신맹일(申孟一)이 1680년(숙종 6년)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에서 처음 이곳에 이주해 왔다. 2년후인 1682년 강화(江華)노씨 노중연이 임실군 성수면에서 이주해 온 뒤 지금까지 신씨와 노씨 두 집안의 후손들이 주축을 이루어 살고 있다.
논 면적이 협소하여 밭농사를 위주로 살다보니 대부분 매우 가난하여 「녹두밭 웃머리」란 별명도 붙었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사업을 시작으로 전 주민들이 근검절약하고 소득증대에 힘써 지금은 모두 다 부자인 마을로 탈바꿈하였다.
이 마을 북쪽 에미재 중간의 문덕초등학교는 1959년 옥택 · 평촌 · 입암리를 학구로 개교했으나, 학생수의 감소로 1995년에 대강초등학교에 통합 폐교되었다. 마을 입구에는 3개의 입석이 있었는데 오래 전부터 마을의 안녕과 행복를 기원하여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