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탄
월산과 금탄을 합하여 법정리로 월탄리라 한다. 1960년대에 행정리를 나누면서 월산리와 금탄리가 분리되었고, 1995년 1월1일 도농 통합시 발족과 함께 ´남원시 대강면 금탄리´라 하고 있다.
1580년경 양천許씨가 먼저 터를 잡았다고 한다. 월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곳은 산허리를 휘감고 돌아가는 섬진강변인데 석양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여울이 있는 곳이라 하여 금탄이라 하였다.
월산의 허씨들 중 일부가 이곳으로 와 마을을 이루었는데 1592년 임진왜란으로 멸족하였고, 그 후 남원梁씨 · 흥덕張씨 등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마을 뒤로는 순창의 책여산으로 가는 계곡인데 마치 말이 구유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한때 구마동(廐馬洞)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옛날 마을 앞의 섬진강에서 사금(沙金)이 나온다고 하여 금탄(金灘)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이라고도 전한다. 남원시와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이 곳에는 옛날부터 1980년대 이전까지 섬진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있었다.(금탄나루)
1992년에 ´대풍교´의 개설로 육로가 열려 나루터가 없어졌고,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매우 편리해졌다. 대풍교 아래는 강바람이 시원하여 인근지역 주민들이 여름철 휴양지로도 즐겨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