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
´남원부 견소곡방(見所谷坊)´의 ´풍산리(楓山里)´에서 1914년 ´남원군 대강면 풍산리´로 바뀌었고. 1960년대 법정리가 3개 행정리인 산촌(山村), 곡촌(谷村), 양촌(陽村)으로 나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마을 뒤에는 풍악산(楓岳山) 줄기가 내려오다 우뚝 솟아 있는데, 제일 높은 ´삼망봉´이 423m이다. 다시 그 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뻗어내려 청룡 백호를 이루고 있다.
풍수설에 조선시대 8대 명당의 하나인 “홍곡단풍(鴻谷 · 風)”이 있다 하는데, 바로 산촌마을 뒷산에 있는 조선조 명재상 황희의 조부인 황균비(黃均庇)의 묘를 말한다.
황희의 부친은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잡아준 홍곡단풍(鴻谷 · 風) 명당에 이 묘를 쓴 후 당시의 서울인 개경으로 이사를 하여 황희(黃喜) 정승을 낳았다고 한다.
문덕봉과 책여산이 바라보이는 마을 주변 경치가 좋아 ´산수몰(마을)´이라 부르다가 ´산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서기 1530년경(中宗朝)에 장수황씨가 처음 정착하였고, 약 120년후인 1650년경에는 연안김씨(延安金氏)가 들어와 함께 살게 되었다.조선 정조12년(1788년)에 창건한 풍계서원(楓溪書院)이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데 당초 덕과면 사율리에 있었던 서원을 1788년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