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암
´남원부 서면 생조벌방 생암리´로 이어왔으나, 1914년 ´남원군 대강면 생암리 광암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직동, 광동, 제암, 생사 4개 동네를 합하여 법정리인 ´생암리´라 하였는데, 1960년대에 직동, 광동, 제암을 합하여 행정리인 ´광암리´라 하였다.1995년 1월1일 도농통합시 발족과 함께 ´남원시 대강면 광암리´가 되었다.
1824년 남원尹씨가 선산을 관리하고자 지금의 직동에 정착한 이래 그 후손들이 계속 거주해 왔다고 한다. 1829년(순조) 흥덕張씨가 광동에 은거하였고, 1826년에는 경주金씨가 제암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직동´은 윤씨들이 후손들을 위해 사욕을 버리고 정직하고 모범적인 처세를 하며 살자는 뜻으로 ´정직(正直)´의 ´곧을 직(直)´자를 넣어 지은 것이라 한다.
'광동´은 마을 터가 양지바른 산밑이긴 하나 터가 좁은지라 이곳에 살면서 개척정신으로 시야가 넓어야 하겠다는 뜻으로 ´넓을 광(廣)´자를 넣어 廣洞이라 지었다 한다.
´제암(濟岩)´은 옛날 마을의 서북쪽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가 마을의 재앙을 제거해 준다는 설에 따라 동네의 한 여인이 바위를 치마로 감싸다가 마을 앞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따라서 바위가 이 마을로 건너왔다는 뜻으로 ´건널 제(濟)자´를 넣어 지었다고 한다.
주변의 산세가 좋아 묘지가 많아 위토도 많은데 매년 묘사를 자주 차리다보니 오래도록 가난을 면치 못하였다고 한다.
1979년 섬진강 가에 광암양수장이 들어섰으며, 1990년경에 마을 주변 야산을 개발하였고, 1995년에는 경지정리를 하였다. 1996년 마을회관을 지었고, 1998년 마을창고를 지어 활용하고 있다.
1989년 생암보건지소가 문을 열어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관리해오고 있다. 1958년부터 1998년 2월까지 광덕초등학교가 금탄, 광암, 생사, 신기, 가덕, 방산지역의 초등교육에 기여하다가 폐교되었다. 이곳에 노인복지시설인 광덕원이 2004년 3월에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