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촌
조선시대까지는 견소곡방(見所谷坊)이라 하여 속칭 ´견바실´ 또는 ´점바실´로 불러오다 1914년 대강면 평촌리가 되었다. 1995. 1. 1 도농통합시 발족과 함께 ´남원시 대강면 평촌리´로 되었다.
중종(中宗)원년(1506년) 천안全氏 중시조인 나주목사 전인손(全仁孫)이 갑자사화(1504년)로 인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지금의 마을보다 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질마재 들에서 정착했으나 1650년경 지금의 위치로 다시 이주하였다. 그 후 경주최씨, 밀양박씨, 경주정씨, 금성나씨 등이 들어왔다고 한다. 본 마을인「큰몰」과, 500m 떨어진 곳의 덕동(德洞, 새터)로 이루어져 있다.
옛날에 ´견바실´로 부른 것은 견소곡(見所谷)의 새김말로 유래했으며, ´점바실´은 덕동(새터)에 점(店)이 있다하여 불렸다고 한다. 후에 다시 마을 앞뜰이 넓어 평촌(坪村)이라 부르게 됐다. 새터 뒤에는 옛 도요지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마을에 있는 충효문과 효열문이 있다. 충효문은 경주정씨 중시조 정원세가 조부의 사망으로 3년동안 시묘를 하던 중에 영조(英祖)의 국상을 맞자 다시 시묘살이 5년을 더하자, 정조(正祖)가 이를 높이 치하하여 충효공(忠孝公)이란 시호를 내리자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