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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면 행정복지센터

대강면 역사

고려시대 이후 남원부에서 관할하는 48방 중 견소곡방(見所谷坊), 초랑방(草郞坊), 생조벌방(生鳥伐坊) 지역이었다. 고려시대에 수군을 중히 여겨 전국에 진(津)을 두고 나루터를 설치하였는데, 이때부터 방산(芳山) 나루터와 금탄(金灘)나루터가 있었다 한다.용성지 고적편에 "부의 서쪽 60리에 보유향(寶有鄕)이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우리 면지역의 옛 지명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14년에 3개방을 합쳐 남원군 대강면(帶江面)이라 하였으며, 면사무소를 사석리 502번지에 두었다. 직할하천인 섬진강이 인근 군 읍지역과 경계를 이루며 면 하부지역을 혁띠처럼 흐르고 있어, 띠 대(帶) · 물 강(江)자를 쓴 “대강면”이라 하였다고 전한다.13개 법정리에 22개 행정리와 26개 자연부락이 있었으나, 1981년 7월1일 사촌리를 사촌1구 · 2구로, 방동리를 편동 · 양동으로 나눔으로써 지금은 13개 법정리 · 24개 행정리로 되어있다.

1925년 5월1일 대강초등학교(사석), 1946년에는 수홍초등학교(후에 이전하여 문덕초등학교로 명칭 변경), 1955년 4월27일에는 대강중학교(방동), 1958년 8월25일에 대강초등학교 광덕분교가 문을 열었다.

1961년에는 대강우체국, 1971년에는 대강농업협동조합이 생겼다.

1971년 5월15일부터 수촌마을 앞에 수홍출장소를 두어(남원군조례 제149호) 풍산 · 수홍 · 옥택 · 평촌 · 입암 등 5개 법정리 9개 마을의 행정을 관할하였다.

1978년에는 문창초등학교(수홍리 도곡)가 생겼다.수홍출장소는 소재지를 잇는 지방도730호선 개설에 따라 1985년 7월1일 폐지(남원군조례 제849호)되었다.

1987년 1월1일 입암리 일부를 순창군 유등면(책암리)에 편입하였다.(대통령령 제12007호)

1991년 12월24일 ´사석리 728번지´에 현재의 면청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1995년 1월1일 도농통합시 발족으로 ´남원시 대강면´이 되었다.

1995년 대강보건지소 부설 물리치료실이 생겼다. 농촌인구 감소와 취학아동수의 격감으로 1991년에는 문창초등학교, 1995년에는 문덕초등 학교, 1998년에는 광덕초등학교가 차례로 폐교되어 대강초등학교로 통합되었다.

순자강

금지와 대강 경계에서 방동리까지의 섬진강 상류를 옛날에는 순강(순江) 또는 순자강(순子江)이라고 불렀다. 방뜰의 풍부한 곡식과 강에서 우글거리는 물고기 등, 무한량의 먹이에다 강변의 무성한 수풀은 철새에게는 천혜의 낙원이었다. 지금도 사시사철 갖가지 철새들이 찾아와 이 강변에 서식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가을에 떼를 지어 몰려와 성시를 이루는 것이 메추리였다. 그래서 메추리가 많은 강이라 하여 순자강(순子江)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옛날에 송동(두동리)에 살던 김취용(金就容, 전주판관을 지냈다고 한다)이란 사람이 병으로 몸져눕자, 아들 김정설(金廷卨)은 지성을 다하였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한여름의 어느 날, 아버지가 메추리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가을철이 되어야 찾아오는 메추리를 무더운 여름철에 구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효성이 지극한 김정설은 천지신명에게 기원하고는, 메추리가 많이 서식한다는 순강을 찾았다. 두레기(대강 입구)의 강가를 더듬어 올라가는데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메추리 한 쌍이 하늘에서 나타나 강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김정설은 반갑게 그 메추리를 건져다 부친에게 공양하였더니 병환이 말끔히 완쾌되었다. 나라에서는 그의 효성을 전해지자 정려를 내리고, 메추리가 떨어진 강이니 메추리순 , 아들 子를 써서 순자강(순子江)이라고 했다고 한다.